은총

 

 

 

 

 

그때 화장실에 있던 두 신사가 그 사람을 일으켜세워 보려고 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굴러떨어진 계단 밑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이 겨우 뒤집어놓았다. 모자는 몇 미터 저쪽에 굴러떨어져 있고, 얼굴을 아래로 하고서 나자빠져 있는 마룻바닥의 때와 질벅질벅한 물에 옷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두 눈을 꼭 감고, 드렁드렁 소리를 내면서 숨을 쉬고 있었다. 입가에서 가느다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두 신사와 급사 하나가 그를 이층으로 들어다 또다시 바의 마룻바닥에 눕혔다. 2분도 못 되어 사람들이 그를 빙 둘러쌌다. 바의 지배인이 그 사람이 누구며, 같이 온 손님은 누구냐고 모든 사람에게 물었다.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으나, 급사 하나가 그 손님에게 럼주를 조금 갖다드린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양반이 혼자였던가?” 하고 지배인이 물었다.

“아뇨, 다른 손님 두 분이 같이 계셨습니다.”

“그 손님들은 지금 어디 계셔?”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말했다.

“바람을 쏘이시오. 기절했나 봐요.”

둥글게 둘러싸고 있던 구경꾼들이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섰다. 바둑판 마루 위에 누운 그 사람의 머리 가까이에 거무죽죽한 핏덩이가 엉겨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이 잿빛처럼 창백해진 데 놀라 지배인은 순경을 부르러 보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의 칼라와 넥타이를 풀어주었다. 그는 잠시 눈을 떴다가 후우 한숨을 쉰 다음 다시 눈을 감았다. 그를 2층으로 끌어올린 신사 중 하나는 더럽혀진 실크 모자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배인은 부상을 입은 이 사람이 누구이며, 같이 있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냐고 거듭 물었다. 바의 문이 열리더니 몸집이 큰 순경이 들어왔다. 순경 뒤를 좇아 골목을 내려온 군중들이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려고 서로 싸우면서 문 밖에 모여들었다.

지배인은 곧 자기가 아는 대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둔중한 표정의 젊은 순경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순경은 무슨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경계하는 듯이 지배인과 땅바닥에 누운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가 장갑을 벗고 가슴에서 조그만 수첩을 꺼내더니, 연필에 침을 묻혀 적어놓을 태세를 갖추었다. 그는 사투리가 섞인 말씨로 사람들을 의심하는 듯이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구지요? 이름과 주소는?”

자전거복을 입은 어떤 청년이 빙 둘러싼 구경꾼을 헤치고 나와 재빨리 그 다친 사람 옆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순경도 도우려고 무릎을 꿇었다. 그 청년은 다친 사람의 입에서 피를 닦아낸 다음 브랜디를 가져오라고 했다. 순경은 명령조로 같은 명령을 되풀이했다. 보이가 술잔을 들고 달려왔다. 브랜디를 사나이의 목구멍으로 흘려넣었다. 몇 초 이내에 사나이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기를 둘러싼 얼굴들을 보고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았는지 일어서려고 버둥거렸다.

“이젠 괜찮으십니까?” 자전거복을 입은 청년이 물었다.

“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고 다친 사나이는 일어서려고 했다.

그는 부축을 받고 일어섰다. 지배인이 병원에 가라고 뭐라고 일러주고, 구경꾼들 중 몇 사람은 충고를 주었다. 짜부라진 실크 모자가 사나이의 머리 위에 놓여졌다. 순경이 물었다.

“어디 사시오?”

사나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서 콧수염 끝을 비틀기 시작했다. 자기 사고를 가볍게 보는 눈치였다. 아무 일도 아니라 사소한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소리가 분명치 않았다.

“어디 사시오?” 순경이 되물었다.

사나이는 사람들더러 마차를 하나 불러달라고 했다. 마차를 부를까 어떨까 의논하는 동안 키가 크고 날씬하며 얼굴빛이 흰 신사가 길다란 누런 얼스터 외투를 입고 바 저쪽 끝에서 건너왔다. 이 광경을 보고 그가 외쳤다.

“어이, 톰, 웬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사나이는 대답했다.

이 신사는 자기 앞에 있는 사나이의 딱한 꼴을 훑어보고 순경을 향해 말했다.

“염려 마시오, 순경. 내가 이 사람 집까지 바래다줄 테니.”

순경은 경례를 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파워 선생님!”

“자, 가세, 톰” 하고 파워 씨는 친구의 한 팔을 잡았다. “뼈는 다치지 않았어? 뭐? 걸을 수 있겠어?”

자전거복을 입은 청년이 저편 팔을 잡자 구경꾼들은 갈라졌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소?” 하고 파워 씨가 물었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졌습니다” 하고 자전거복을 입은 청년이 대꾸했다.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다친 사람이 중얼거렸다.

“천만에요.”

“우리 그럼 한 잔……?”

“다음에 하지요, 다음에.”

세 사람은 바를 나갔다. 구경꾼들도 이 문 저 문으로 빠져 골목으로 흩어졌다. 지배인은 사고 현장을 조사하기 위하여 계단 있는 데로 순경을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그 손님이 헛디딘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손님들은 다시 자리에 앉고, 보이가 마루의 핏자국을 닦아냈다.

그래프튼 가로 나오자 파워 씨가 휘파람을 불어 차를 세웠다. 다친 사람은 또다시 성의껏 치하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뵐 때가 있었으면 합니다. 제 이름은 커난이라고 합니다.”

충격과 시작되는 고통 때문에 다소 취기가 깨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커난 씨를 차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파워 씨가 마부에게 갈 곳을 일러주고 있는 동안 커난 씨는 청년에게 다시 치하하며, 서로 같이 술을 좀 나눌 수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다음에 하지요” 하고 청년은 말했다.

마차는 웨스터모어랜드 가를 향해 떠났다. 밸러스트 사무소 앞을 지날 때 보니 시계는 아홉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구(河口)에서 불어오는 동풍이 찌르는 것만 같았다. 커난 씨는 추워서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친구가 어떻게 된 사고냐고 말해보라고 했다.

“대답 못 하겠어, 혀가 아파서.”

“어디 봐.”

친구는 마차 바퀴 위로 몸을 굽히고서 커난 씨의 입 안을 들여다 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성냥을 그어서 두 손으로 싸 가리고 커난 씨가 순순히 벌린 입 속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차가 흔들려서 성냥이 딱 벌린 입 앞에서 까불거렸다. 아랫니와 잇몸에 선지피가 엉겨붙고 혀끝이 조금 깨물려 떨어져나간 것 같았다. 성냥불이 꺼졌다.

“보기 흉한데.” 파워 씨가 뇌까렸다.

“아무렇지도 않아.” 커난 씨는 이렇게 대꾸하고서 입을 다물고는 더럽혀진 외투 깃을 잡아당겨 목을 쌌다.

커난 씨는 자기 직업의 위신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구식 외판원이었다. 시내로 나올 적에는 언제나 과히 초라하지 않은 실크 모자를 쓰고 각반까지 쳤다. 이 두 가지 몸단장 덕분으로 언제나 일이 잘 통한다고 스스로 말했다. 또 자기가 숭배하는 영웅, 블래크화이트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이따금씩 그 위인의 추억담을 옛말과 흉내를 섞어가면서 하기도 했다. 현대적인 장사술은 그에게 크로 가에 조그만 사무실을 하나 겨우 갖게 했으며, 창문의 블라인드 위에는 회사 이름과 런던, EC라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 조그만 사무소의 벽난로 위에는 납으로 만든 양철통이 몇 개 가지런히 놓여 있고, 창가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검은 액체가 늘 반쯤 들어 있는 자기 그릇이 너댓 개 놓여 있었다. 이 그릇으로 커난 씨는 차 맛을 보았다. 한 모금 입에 물고 훌쩍 빨아들이고서 입 안을 적시고는 난로 속 쇠살대 위에다 뱉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맛을 음미했다.

그보다 나이가 훨씬 젊은 파워 씨는 더블린 성(城)의 아일랜드 왕립 경찰 본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사회적으로 출세해 가는 곡선과 그의 친구가 몰락해 가는 곡선이 서로 교차했다. 그러나 커난 씨가 성공의 절정에 있을 때에 그를 사귄 사람들이 아직도 그를 그럴듯한 인물로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이 커난 씨의 몰락의 설움을 덜어주고 있었다. 파워 씨는 이러한 친구 중의 하나였다. 파워 씨가 무슨 신세를 지고 있기에 저렇게까지 정답게 굴까 하고 친구들까지 수군거렸다. 그는 그러한 명랑한 젊은이였다.

마차가 글래스네빈 로의 조그만 집 앞에 서고 커난 씨는 부축을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그를 침대에 눕히는 동안 파워 씨는 아래층 부엌에 앉아 아이들에게 어느 학교에 다니며 무슨 책을 배우느냐고 물었다. 아이들 ――딸 둘과 아들 하나 ―― 은 아버지는 꼼짝 못하게 되고, 어머니가 자리에 없는 것을 알고 그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들의 태도와 말버릇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에 커난 부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부엌으로 들어왔다.

“저런 꼴이 어디 있습니까! 저이는 저러다가 결국 가고 말 거란 말예요. 천벌이지요. 금요일부터 내리 술타령이랍니다, 글쎄!”

파워 씨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며, 그저 우연히 사고 현장에 갔던 것이라고 조심조심 설명했다. 커난 부인은 파워 씨가 가정 싸움을 자주 화해시켜 주던 일과 그 밖에도 요긴할 때에 작은 돈이나마 여러 번 얻어 쓴 일을 생각하고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얘긴 안 하셔도 잘 알고 있어요, 선생님. 선생님은 저 양반의 친구이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시다는 걸 잘 압니다. 그 친구분들은 저 양반이 주머니에 돈푼이나 있으면 여편네나 자식들 가까이에는 얼씬도 못하게 모시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흥, 좋은 친구들이지요? 오늘 저녁엔 누구하고 놀았죠, 저 양반?”

파워 씨는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아무것도 없어 대접도 못 하니 미안합니다.” 부인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모퉁이에 있는 포가티 가게에 누굴 보내겠어요.”

파워 씨는 일어섰다.

“저이가 돈을 좀 가지고 들어올까 하고 우린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지 뭐예요. 저이는 식구가 있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에요.”

“아, 이거 보세요, 부인” 하고 파워 씨는 입을 열었다. “시정 좀 하도록 우리가 애써보겠어요. 마틴에게 얘기해보겠습니다. 그 사람이면 무슨 방법이 있을 겁니다. 언제 저녁에 둘이서 찾아와서 상의하겠습니다.”

부인이 문까지 배웅을 나왔다. 마부가 발을 구르며 왔다갔다하면서 몸을 녹이느라고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주인을 집까지 데려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그는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떠날 때 그는 쾌활하게 부인에게 모자를 흔들었다.

“새 사람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부인.”

커난 부인은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당황한 눈으로 마차를 지켜보고 있다가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가 남편의 호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그녀는 일손이 빠른, 실리적인 중년 부인이었다. 얼마 전에 은혼식을 축하하고, 파워 씨의 반주에 따라 남편과 왈츠를 추어 정분을 더욱 돈독히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결혼식이 어디서 있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성당 문으로 달려가서 신랑신부를 보고는, 말쑥하게 프록코트와 보라색 바지를 입고, 다른쪽 팔에는 점잖게 실크 모자를 걸친 살찐 쾌활한 사나이의 팔에 매달려 샌디마운트의 해성교회(海星敎會)에서 나오던 것을 회상하며 생생한 기쁨에 잠기는 것이었다. 신혼 3주 만에 아내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더 참을 수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아이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란 역할이 그녀로 하여금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견디어내게 했으며, 25년 동안 남편을 위하여 영악하게 살림을 꾸려온 것이었다. 위로 두 아들은 자립해 살고 있었다. 하나는 글라스고의 포목점에서 일하고, 또 하나는 벨파스트의 어떤 차(茶) 상점의 점원으로 있었다. 둘 다 효자여서, 꼬박꼬박 집으로 편지를 보내왔으며, 때로는 집에 돈을 부쳐올 때도 있었다. 다른 애들은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커난 씨는 다음날 자기 사무소에 편지를 보내고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커난 부인은 남편을 위하여 고깃국을 끓여주고는 톡톡히 바가지를 긁었다. 그녀는 남편이 자주 술을 마시는 것을 기후의 변화쯤으로 받아들이고는, 병이 나면 성의껏 간호를 하며, 늘 억지로라도 조반을 들게 했다. 이보다 못한 남편들도 얼마든지 있으며, 아이들이 다 자란 후부터는 난폭하게 구는 법도 없고, 또 조그만 주문이라도 맡으려고 토마스 가 끝까지 갔다 돌아오기도 꺼리지 않는 성미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틀 밤이 지난 후에 그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녀는 그들을 병실로 안내했다. 방 안 공기는 앓는 사람의 체취로 코를 찔렀다. 그녀는 난로 옆에 있는 의자를 그들에게 권했다. 이따금씩 혀가 뜨끔뜨끔 쑤셔서 종일토록 다소 짜증만 부리던 커난 씨도 이제는 훨씬 공손해져, 침대 위에 베개를 고여놓고 거기 기대 앉아 있었다. 부은 두 뺨에 떠오른 불그레한 빛은 다 꺼지지 않은 숯불을 연상시켰다. 방 안이 정돈되어 있지 않은 것을 그는 손님들에게 사과했으나, 동시에 선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다소 우쭐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의 친구들, 즉 커닝엄 씨, 머코이 씨, 파워 씨가 응접실에서 커난 부인에게 털어놓은 계획의 대상이 되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 계획을 짜낸 사람은 파워 씨였으나 그것을 실제로 추진시켜 나가는 일은 커닝엄 씨가 맡았다. 커난 씨는 본시 신교 집안 출신이었다가 결혼할 당시 천주교로 개종했으나 20년 동안 한 번도 성당에 발을 들여놓은 일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를 즐겨 공격했다.

커닝엄 씨는 이런 일에는 적임자였다. 그는 파워 씨보다 나이는 많으나 동료였다. 가정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주정뱅이여서 남의 앞에 내놓을 수 없는 여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몹시 동정했다. 그는 아내를 위하여 여섯 번이나 살림을 마련했으나 그때마다 아내는 남편 명의로 가구를 잡혀먹었다.

누구나 다 이 가엾은 마틴 커닝엄을 존경했다. 그는 다시 없을 만큼 생각이 깊고, 영향력도 크고, 머리도 좋았다. 천성이 민첩한 데다가 경범죄 재판소에서 여러 사건을 오랫동안 다루어왔기 때문에 더욱 날카로워진 인간에 대한 예리한 지식은 일반 철학이라는 물 속에 잠깐 동안 잠겼던 탓으로 단련되어 있었다. 그는 박식했으며, 친구들은 그의 의견이라면 존중하고, 그의 얼굴이 셰익스피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계획을 다 듣고 나서 커난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께 일임하겠습니다, 커닝엄 선생님.”

2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해온 그녀에게는 꿈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종교도 하나의 습관이 되어버려, 자기 남편의 나이쯤 된 사람이 죽기 전에 사람이 일변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이번 사건만 하더라도 그녀는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싶었으며, 혹독한 여자라고 보이기가 싫어서 그렇지, 그렇지만 않다면 남편의 혀가 짧아진 것쯤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은 심사였다. 그러나 커닝엄 씨는 능력 있는 사람이고, 그래도 종교는 역시 종교가 아니냐, 그 계획은 잘될지도 모르고, 또 적어도 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녀의 신앙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가톨릭 신앙 가운데서도 성심(聖心)이야말로 가장 널리 유익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또 성례(聖禮)를 시인하고 있었다. 그녀의 신앙은 부엌 세계에 한정된 것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밴시[집에 죽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통곡으로 예고해 준다는 요정]나 성신(聖神)의 존재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손님들은 이번 사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커닝엄 씨는 전에 한번 이와 비슷한 경우를 안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어떤 일흔 살 나는 노인이 간질로 발작을 일으킨 동안에 혀끝을 깨물어 조각이 떨어졌는데, 나중에 혀가 다시 자랐기 때문에 흠집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일흔이 아냐” 하고 환자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했다.

“일흔이면 어떡하게.” 커닝엄 씨도 지질 않았다.

“지금은 아프지 않아?” 머코이 씨가 끼어들었다.

머코이 씨는 한때는 꽤 명성을 떨치던 테너 가수였다. 역시 전에 소프라노 가수였던 그의 아내는 싼 레슨료로나마 이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가 아직까지 걸어온 인생길이란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아니어서 꾀로 살아가야 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부 철도회사의 역부로 있던 때도 있었고, 《아일랜드일보》와 《프리맨즈 저널》사의 광고 모집원, 석탄회사의 시내 위탁판매원, 사립탐정, 부군수의 사무원으로도 있었으며, 최근에는 시검시관(市檢屍官)의 비서가 되었다. 이 새 직책 때문에도 커난 씨의 사고에 관심이 없지 않았다.

“아프냐고? 별로 뭐” 하고 커난 씨가 대답했다. “근데 속이 좀 쓰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아.”

“술 탓이야.” 커닝엄 씨가 자신있게 대꾸했다.

“천만에.” 커난 씨도 지진 않았다. “차에서 감기에 걸린 것만 같아. 목으로 자꾸만 무엇이 넘어와. 가래인지 혹은 ――”

“쓴물이야.” 머코이 씨가 끼어들었다.

“저 목구멍 속에서 자꾸만 올라오는데, 기분이 나빠.”

“그래, 그래.” 머코이 씨가 음성을 높였다. “가슴 말이지.”

그러고 나서 그는 내 말이 맞지 않느냐는 듯이 커닝엄 씨와 파워 씨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커닝엄 씨는 빨리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파워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 글쎄,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뭐야.”

“정말 자네 신세 많이 졌네” 하는 환자의 말에 파워 씨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나와 같이 있던 그 두 친구는 ――”

“누구하고 있었는데?” 하고 커닝엄 씨가 물었다.

“어떤 녀석이야. 이름은 몰라. 제기랄, 그자 이름이 뭐라더라? 노르께한 머릴 한 땅딸막한 녀석이었는데…….”

“그리고 또?”

“하포드.”

“흥!” 하고 커닝엄 씨가 코웃음을 쳤다.

커닝엄 씨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그가 남몰래 알고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다들 눈치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흥” 하는 단음절 소리에는 어떠한 도덕적인 의미가 들어 있었다. 하포드 씨는 때로 다른 친구들과 작은 그룹을 지어 일요일 정오 때가 지나면 곧 시내를 떠나 교외에 있는 어느 술집으로 나갔다. 거기를 찾아오는 멤버들은 성실한 나그네라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동료들도 절대로 그의 출신을 잊으려 들지는 않았다. 그는 인생의 첫걸음을 노동자들에게 적은 돈을 비싼 이자로 빌려 주는 궁벽한 이자놀이로 시작했다. 그후 골드버그 씨라는 뚱뚱하고 키가 작은 사람과 동업으로 리피 대부은행이라는 것을 경영하게 되었다. 하포드 씨가 받드는 것은 유대인적인 도덕관에 지나지 않았으나, 친구인 가톨릭 교인들은 자기들이 직접 혹은 대리인을 통하여 그의 가혹한 빚 재촉에 시달릴 적마다 아일랜드계 유대놈이니 무식쟁이니 하고 욕을 하고, 백치 아들을 둔 것은 고리대금 때문에 하나님의 천벌을 받은 탓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들은 그의 좋은 점을 알아주기도 했다.

“그 사람 어딜 갔는지 모르겠어” 하고 커난 씨가 끼어들었다.

그는 사건의 상세한 점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있기를 바랐다. 어떤 착오가 생겨서 하포드 씨와 자기가 헤어진 것으로 친구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다. 하포드 씨의 술버릇을 잘 아는 친구들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파워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끝이 좋은 게 제일이지.”

커난 씨는 곧 화제를 바꾸어 말했다.

“그 젊은이 참 사람이 점잖던데, 그 의사 말이야.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하고 파워 씨가 맞장구를 쳤다. “과료(科料) 정도에 그치지 않고 일주일쯤 구류를 당했을지도 모르지.”

“그렇고말고.” 커난 씨도 맞장구를 치고는 그때 일을 생각해 내려고 한다. “아, 생각나는군. 그때 순경이 하나 있었겠다. 점잖은 청년 같았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네가 곤드레만드레가 돼 있던 것 같던데 그래, 톰” 하고 커닝엄 씨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사실이야” 하고 커난 씨도 정색을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자네가 순경을 적당히 구워삶은 모양이군, 잭?” 머코이 씨가 끼어들었다.

파워 씨는 세례명[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고루한 편은 아니었으나 얼마 전에 머코이 씨가 부인이 있지도 않은 지방 공연 초대를 받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하여 손가방과 여행용 가방을 구하러 다닌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자기가 속았다는 사실보다도 이런 졸렬한 장난을 친 데 화가 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커난 씨가 묻기라도 한 것처럼 대답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커난 씨는 대단히 화를 냈다. 그는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깊이 자각하고 시 당국하고는 점잖은 관계를 가지고 살고자 하며, 그가 시골 바보들이라고 부르는 순경들에게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분개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이 그래서야?” 하고 그는 물었다. “이 무례한 바보들을 먹이고 입히려고? ……바보 아니고 뭐야, 그놈들이?”

커닝엄 씨는 웃었다. 그는 근무시간에만 시의 공무원이었다.

“그렇지 않고 뭐야, 톰?” 하고 텁텁한 목소리로 시골 사투리를 섞어가며 명령조로 말을 이었다.

“65번, 양배추 받아유!”

모두가 웃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야기에 한몫 끼고 싶은 머코이 씨가 그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는 눈치를 보였으므로 커닝엄 씨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봐, 그건 말이야, 덩치만 커다란 시골 양반들을 몰아다가 훈련하는 수용소에서 있던 일이라는데, 경사 나으리가 양반들을 벽을 따라 죽 일렬로 서게 하고서 접시를 번쩍 쳐들게 한단 말이야.” 그는 괴상한 몸짓으로 설명을 했다.

“식사 때 말이야. 경사 나으리는 자기 앞 식탁 위에다 무지하게 큰 통을 올려놓고 삽만큼이나 큰 스푼으로 양배추 덩어리를 건져서 방 건너로 던지면 양반들이 그걸 접시로 받아야 해. 그런데 던질 때, 65번, 양배추 받아유! 이러더란 말이야.”

모두가 또다시 웃었다. 그러나 커난 씨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신문에 투서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여기 오는 그 짐승 같은 촌뜨기놈들은 사람을 맘대로 하려고 든단 말이야. 마틴, 그놈들이 어떤 인간인지 말 안 해도 알지, 자넨.”

커닝엄 씨는 적당히 동의하는 듯했다.

“세상 만사가 다 그런 법이라네” 하고 그는 맞장구를 쳤다. “나쁜 놈도 있고 좋은 놈도 있고.”

“아, 그래, 좋은 놈도 더러 있다는 건 나도 인정해.” 그 말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커난 씨도 맞장구를 쳤다.

“그런 인간들에게는 그저 말대꾸를 안 하는 게 상수지 뭐야.” 머코이 씨가 끼어들었다. “이게 내 의견이야.”

커난 부인이 방으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다 쟁반을 놓으며 말했다.

“자, 어서들 드세요.”

파워 씨가 덜어서 돌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기 의자를 부인에게 권했다. 부인은 아래층에서 다리미질하다 왔다고 하면서 사양했다. 그리고 파워 씨 등뒤에서 커닝엄 씨와 서로 고개를 끄덕거린 후에 방을 나가려고 했다.

“여보, 내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소?” 하고 남편이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아, 당신 말이오! 내 손등이나 드릴까!” 하고 커난 부인은 톡 쏘아붙였다.

남편은 아내 뒤에다 대고 다시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가엾은 주인 양반에겐 아무것도 안 주기냔 말이야, 여보!”

그가 어찌나 우스운 얼굴과 목소리로 말했던지 스타우트 병을 돌리면서 모두들 와 하고 웃었다.

손님들은 잔에다 따라 마시고는 잔을 테이블 위에다 놓고 잠시 쉬었다. 그러다가 커닝엄 씨가 파워 씨 쪽을 돌아보며 무심코 하는 말로 물었다.

“목요일 저녁이라고 그랬지, 잭?”

“그래 목요일이야.”

“좋아!” 하고 커닝엄 씨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그럼 우리 모두 머올리 집에서 만나기로 하지” 하고 머코이 씨가 끼어들었다. “거기가 제일 편리할 테니까.”

“하지만 늦어선 안 돼.” 파워 씨가 진지한 목소리로 다짐을 했다. “문간까지 대만원이 될 테니까 말이야.”

“ 7시 반에 만나세.” 머코이 씨였다.

“좋아!” 커닝엄 씨가 말을 받았다.

“ 7시 반에 머올리 집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커난 씨는 그 틈에 자기도 넣어주려나 하고 눈치를 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나?”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목요일에 뭘 좀 해볼까 그러는 것뿐이야.”

“오페란가?” 커난 씨가 재차 물었다.

“아냐, 아냐.” 커닝엄 씨가 대꾸했는데 피하는 말투였다. “그저 종교상의 일로 잠깐…….”

“그래.”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파워 씨가 솔직히 털어놓고 말았다.

“실은 말이야, 톰, 묵상기도회를 가지려는 거야.”

“맞았어, 그거야.” 커닝엄 씨가 말을 보탰다. “잭하고 나하고 여기 이 머코이하고 ―― 셋이서 다 속속들이 깨끗해지려구 말이야.”

그는 은근히 힘을 주어 비유를 섞어 이 말을 하고는, 자기 목소리에 힘을 얻어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하면 우리는 다 너나 할것없이 악당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너나 할것없이 말이야” 하고 일부러 무뚝뚝하게 말하고 나서, 파워 씨를 돌아다보며 “자, 자백해!” 하였다.

“자백하지.” 파워 씨가 순순히 복종했다.

“그래, 우리 모두 함께 마음을 씻으러 가려는 거야.” 커닝엄 씨가 끼어들었다.

무슨 생각이 문득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만 같았다. 그는 갑자기 앓는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톰, 이제 방금 무슨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올랐는지 자네 알아? 자네도 같이 한몫 끼면 우린 사중무(四重舞)가 될 거란 말이야.”

“좋은 생각이야.” 파워 씨가 한마디 했다. “우리 넷이 같이 하세.”

커난 씨는 잠자코 있었다. 이 제안은 그의 마음에 아무런 뜻도 전하지 않았으나, 어떤 정신적인 힘이 자기로 인하여 친구들에게 미치고 있나 보다고 생각하고 위신상으로라도 가담하지 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잠자코 아무 말도 없이 다소 언짢은 듯한 태도로 듣고만 있는데 친구들은 제수이트 교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제수이트 교파는 과히 나쁘게 생각지 않아.” 마침내 그도 끼어들고 말았다. “교양이 있는 교파야. 취지도 좋다고 생각해.”

“제수이트 교파는 교회 중에서도 제일 큰 교파야” 하고 커닝엄 씨가 힘을 주어 말했다. “제수이트 교파의 단장은 교황 다음 가니까.”

“그건 틀림없어.” 머코이 씨가 맞장구를 쳤다. “무슨 일을 제대로 잘하려면 그리로 가야 해. 그 사람들 세력도 대단해. 일례를 들 것 같으면…….”

“제수이트 교파는 훌륭한 단체야.” 파워 씨였다.

“제수이트 교파에 관해선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지” 하고 커닝엄 씨가 끼어들었다. “다른 모든 교파는 한번씩은 다 개혁을 했는데 이 교파만은 한번도 개혁한 일이 없어. 한번도 그 교파는 문란해진 일이 없단 말이야.”

“그런가?” 하고 머코이 씨가 물었다.

“사실이고말고.” 커닝엄 씨가 대꾸했다. “역사가 증명하는걸.”

“그 파의 성당을 보고, 또 거기 모이는 교인들을 보라구.” 파워 씨였다.

“제수이트 파는 상류계급의 기호에 맞아.” 머코이 씨였다.

“그럼.” 파워 씨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고말고.” 커난 씨도 맞장구를 쳤다. “그들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이야. 더러 그 가운데 속되고 무식하고 거만한 신부들이 ――”

“그 사람들도 제나름대로 좋은 사람들이라구.” 커닝엄 씨였다. “아일랜드의 성직자들은 전세계에서 존경을 받고 있거든.”

“그야 물론이지.” 파워 씨가 맞장구를 쳤다.

“유럽 대륙의 일부 성직자들과는 유가 다르지.” 머코이 씨가 말을 이었다. “이름이 아까운 그런 자들하고는…….”

“자네 말이 옳을지도 몰라” 하고 커난 씨도 수그러졌다.

“물론 내 말이 옳다니까.” 커닝엄 씨도 지질 않았다. “오랫동안 세상 물정을 살피며 살아온 내가 인물 판단도 못할 리가 있나.”

손님들은 서로 뒤따라 술을 마셨다. 커난 씨는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감명을 받은 것이다. 그는 커닝엄 씨를 판단력이 있고 감식력이 있는 사람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았다.

“그저 묵상회야.” 커닝엄 씨가 대답했다. “퍼든 신부가 사회를 봐. 실업계 인사들을 위한 것이라네.”

“톰, 그 신부가 우리에게 너무 까다롭게 굴진 않을 거야.” 파워 씨가 끼어들었다. 권유하는 말투였다.

“퍼든 신부라고? 퍼든 신부라고?” 커난 씨는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잘 알 텐데 그래, 그 신부를, 톰” 하고 커닝엄 씨가 힘을 주어 말했다. “쾌활하고 훌륭한 친구야! 우리처럼 세상을 잘 아는 사람이야.”

“아 ―― 그래, 나도 알 것 같군. 얼굴이 좀 붉고 키가 크지?”

“바로 그 사람이야.”

“그런데 마틴…… 그 사람 설교는 잘하나?”

“아냐…… 여느 설교하고는 달라. 그저 친구 사이의 대화 같은 거야, 상식적인.”

커난 씨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 머코이 씨가 말을 이었다.

“톰 버크 신부, 그 사람 굉장하던데!”

“아, 톰 버크 신부 말이지,” 커닝엄 씨가 맞장구를 쳤다. “타고난 웅변가야. 그 사람 설교를 들은 적이 있지 자네, 톰?”

“들은 적이 있느냐고 내가!” 무시를 당했다는 말투였다. “그야 뭐 듣긴 들었지…….”

“그러나 신학자로선 대수롭지 않다는 평이던데 그래.” 커닝엄 씨가 어째 신통치 않다는 말투로 말했다.

“응 그래?” 머코이 씨도 의심이 간다는 듯했다.

“아, 그야 물론 조금도 잘못된 점은 없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의 설교가 정통은 아니라는 말들을 어쩌다 하는 것 같더군.”

“아! ……굉장한 사람이던데.” 머코이 씨가 감탄했다.

“한번 나도 그의 설교를 들은 적은 있어.” 커난 씨가 말을 이었다. “지금은 설교 제목을 잊어버렸어. 크로프튼하고 내가 성당 뒷자리였지…… 거기가 어디더라 ―― .”

“본진 말인가?” 커닝엄 씨가 말을 받았다.

“그래, 저 뒷문 가까이였어. 무슨 얘긴지 이젠 잊어버렸군……. 옳지, 생각난다. 법왕 얘기, 먼젓번 교황에 관한 얘기였어. 잘 기억이 나. 정말 기가 막혔어, 그 말솜씨하고 그 음성이 말이야! 정말! 기가 막힌 음성이었지 뭐야! ‘바티칸의 죄수’라고 교황을 부르던데그래. 우리가 바깥에 나오니까 크로프튼이 날 보고 하는 소리가 ――”

“그러나 크로프튼은 오렌지당원[아일랜드에서 신교와 영국을 옹호하려고 1759년에 조직된 단체]이 아니던가?” 파워 씨가 끼어들었다.

“물론 그렇지.” 커난 씨가 대꾸했다. “그것도 알짜 오렌지당원이지 뭐야. 우린 무어 가의 버틀러 술집으로 들어갔는데 ―― 난 정말 감동을 받았지 뭐야. 신앙이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준단 말이야 ―― 크로프튼이 그때 한 말이 지금도 잘 생각이 나. ‘커난, 우리가 섬기는 제단은 다르지만 믿음은 같은 것일세’ 하더란 말이야. 아주 말 잘했다고 감동을 받았지 뭐야.”

“그건 의미심장한 말인데” 하고 파워 씨가 맞장구를 쳤다. “톰 신부가 설교하는 성당에는 항상 신교도들도 떼를 지어 왔으니까.”

“신교와 구교 사이엔 그다지 차이가 많지는 않아.” 머코이 씨가 끼어들었다. “둘 다 ――”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 머뭇머뭇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구세주를 믿거든. 다만 신교도들은 교황과 성모 마리아를 안 믿을 뿐이지.”

“그렇지만 물론,” 하고 커닝엄 씨가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대꾸했다. “우리 종교가 진짜 종교거든, 오래된 근본이 되는 신앙이란 말이야.”

“그건 의심할 여지도 없어.” 커난 씨도 힘있게 맞장구를 쳤다.

그때 커난 부인이 침실 문어귀에 와서 “손님이 오셨어요!” 하고 알렸다.

“누구요?”

“포가티 씨.”

“아, 들어오게! 들어와!”

창백하고 갸름한 얼굴이 불빛 속으로 들어왔다. 기다란 금빛 콧수염을 하고 깜짝 놀란 것 같은 눈 위에 또한 동그라미를 그린 눈썹을 가진 사람이었다. 포가티 씨는 수수한 식료품상이었다. 시내에서 인가를 맡아가지고 술집을 경영하다가 재정이 여의치 않아서 이류 양조업자들과 특약을 맺어야만 했기 때문에 사업에 그만 실패하고 만 것이었다. 그는 글래스네빈 로에다 조그만 가게를 열고, 자기 태도가 상냥하니 동네 주부들이 많이 사줄 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몸가짐이 다소 우아했고, 아이들을 칭찬해주고, 말씨도 단정했다. 교양이 없지도 않았다.

포가티 씨는 반 파인트들이 특제 위스키를 한 병 선물로 가지고 왔다. 그는 공손히 커난 씨의 안부를 묻고, 선물을 테이블 위에 놓은 다음 다른 사람들과 대등하게 앉았다. 커난 씨는 포가티 씨에게 식료품 외상값이 아직 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 선물이 고마웠다. 그는 입을 열었다.

“과연 자네답군, 이 사람. 잭, 그걸 따주지 않겠나?”

파워 씨가 다시 잔심부름을 하며, 잔을 부시고 위스키 다섯 잔을 조금씩 따라놓았다. 새 술의 힘으로 대화가 활발해졌다. 의자 위에 오똑 앉은 포가티 씨는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하고 커닝엄 씨가 먼저 기염을 올렸다. “당대의 등불의 하나였지. 그분의 대이상은 라틴계 교회와 그리스계 교회를 통합시키는 데 있었단 말이야. 그게 그분의 목표였어.”

“그분이 유럽에서도 최고 지식인의 하나였다는 말은 나도 가끔 들었어.” 파워 씨가 끼어들었다. “교황이었다는 것을 떠나서 말이야.”

“그렇지.” 하고 커닝엄 씨가 맞장구를 쳤다. “제일 박식은 아닐지 몰라도. 교황으로서의 그분의 모토는 Lux upon Lux ―― 즉 ‘광명 위의 광명’이었어.”

“아니, 아니,” 포가티 씨가 부리나케 말을 가로막았다. “좀 말씀이 틀리신 것 같은데요. Lux in Tenebris였다고 생각하는데요 ―― ‘어둠 속의 광명’이라는.”

“아, 그래.” 하고 머코이 씨가 끼어들었다. “Tenebris가 아니라 Tenebrae가 옳아.”

“실례지만,” 커닝엄 씨도 지질 않았다. 자신있는 말투였다. “역시 Lux upon Lux가 옳아. 그분 전의 교황 비오 9세의 모토가 Crux upon Crux ―― 즉 ‘십자가 위의 십자가’였으니까 두 교황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거지.”

이 추론이 좌중의 승인을 받았다. 커닝엄 씨가 말을 이었다.

“레오 교황은 위대한 학자이자 시인이었다네.”

“얼굴이 억세게 생겼다더군.” 커난 씨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했다.

“그래.” 커닝엄 씨가 맞장구를 쳤다. “라틴어로 시를 썼어.”

“그렇습니까?” 포가티 씨가 물었다.

머코이 씨는 만족스럽게 위스키 맛을 보고 이중의 의미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야.”

“톰, 수업료가 일주일에 1페니인 가난뱅이 학교에 다니던 때도 우린 그런 건 배우지 않았어” 하고 파워 씨가 머코이 씨의 말을 따라 말했다.

“책은 고사하고 흙덩이를 겨드랑이 밑에 끼고 그 가난뱅이 학교에 다닌 사람 중 훌륭하게 된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지.” 커난 씨가 우겨대며 한마디 했다. “옛날 제도가 제일이야. 소박한 교육이었거든. 요즈음의 겉만 번지르르한 교육과는 달라…….”

“지당한 말이야.” 파워 씨가 맞장구를 쳤다.

“사치스러운 점이 없었죠.” 포가티 씨도 맞장구를 쳤다.

그는 사치라는 말을 똑똑히 발음하고 나서 침울하게 술을 마셨다.

“레오 교황의 시 하나에 사진 발명에 관한 것이 있던 것을 읽은 기억이 나 ―― 물론 라틴어 시지만.” 커닝엄 씨였다.

“사진에 관해서라구!” 커난 씨가 음성을 높였다.

“그래” 하고 커닝엄 씨도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글쎄, 생각해보면 사진이란 신기하지 않아?” 하고 머코이 씨가 끼어들었다.

“아, 물론이지.” 파워 씨가 맞장구를 쳤다. “위대한 사람은 보는 눈이 달라.”

“시인도 말했듯이 ‘위인은 광인과 일맥 상통한다’는 말씀이군요.” 포가티 씨가 한마디 했다.

커난 씨는 마음속이 뒤숭숭한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어떤 까다로운 문제에 관한 신교의 주장을 생각해내려고 하다가 결국 커닝엄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봐, 마틴, 교황 중에는 ―― 물론 지금 교황이나 그 먼저 교황이 아니고 ―― 옛날의 어떤 교황들은 ―― 절대로…… 과히 훌륭치 못한 이들도 있었지 않나?”

침묵이 흘렀다. 커닝엄 씨가 말을 이었다.

“아, 그야 더러 나쁜 사람도 있었지…… 하지만 이건 놀랄 만한 일이란 말이야. 단 그 중 한 사람도, 가장 심한 주정뱅이도 철저한 악당도 법좌(法座)에서 그릇된 교의를 설교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지 뭐야. 자, 놀라운 일이 아니냔 말이야?”

“그렇지.” 커난 씨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포가티 씨도 맞장구를 쳤다. “교황이 법좌에서 설교할 때에는 절대로 틀리는 일이 없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커닝엄 씨가 말을 받았다. “교황이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는 건 저도 압니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의 일인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포가티 씨가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술병을 집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씩 따라주었다. 머코이 씨는 술이 전부 돌아갈 만큼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처음 잔이 아직 비지 않았다고 사양했다. 다들 사양하면서 받았다. 잔에 떨어지는 위스키의 가벼운 음악소리는 듣기 좋은 간주곡이었다.

“이야기가 어디서 중단되었지, 톰?” 머코이 씨가 물었다.

“교황은 절대로 잘못이 없다는 얘기였지 뭐야.” 커닝엄 씨가 말을 받았다. “이건 교회사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었어.”

“어떤 사건이었는데, 마틴?” 파워 씨가 물었다.

커닝엄 씨가 굵직한 손가락 둘을 쳐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추기경, 대주교, 주교들로 된 로마 교황 추기단 가운데서 두 사람만이 이 설에 반대했지 뭐야. 다른 사람들은 만장일치였는데, 근데 이 두 사람만이 절대로 말을 안 듣는다 그말이야.”

“하아!” 하고 머코이 씨가 놀랐다.

“그 중 하나는 독일 추기경인데 이름이 돌링인지…… 다울링인지…… 하는 ――”

“다울링은 독일 사람이 아냐. 그건 확실해” 하며 파워 씨가 웃었다.

“글쎄, 이름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이 위대한 독일 추기경이 한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존 매케일이었어.”

“뭣이?” 커난 씨가 음성을 높였다. “튜엄의 존 말인가?”

“그게 확실하십니까?” 포가티 씨가 물었다. 의심이 간다는 말투였다. “난 이탈리아 사람이나 미국 사람으로 아는데요.”

“튜엄의 존이 맞습니다.”

커닝엄 씨가 다시 이렇게 말하고서 술을 마셨다. 다른 두 사람도 따라 술을 마셨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서 온 모든 추기경, 주교, 대주교들하고 이 두 사람 사이에 일대 논쟁이 벌어져 결국엔 교황 자신이 일어나 법좌에서 불과오설(不過誤說)은 교회의 교리라고 선언을 했지 뭐야. 바로 그 순간 그때까지 반대해 온 존 매케일이 일어나서 사자 같은 목소리로 ‘Credo!’ 하고 부르짖었어.”

“‘믿습니다’라는 말이군요.” 포가티 씨가 말했다.

“‘Credo!’라고! 이 말은 그 사람의 신앙을 나타낸 말이야. 교황의 말이 떨어진 순간 그 사람은 복종하고 말았지 뭐야” 하고 커닝엄 씨가 말했다.

“그리고 다울링은 어찌 되었지?” 머코이 씨가 물었다.

“그 독일인 추기경이 복종할 것 같아? 교회에서 도망쳐 버렸지.”

커닝엄 씨의 말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교회라는 거대한 이미지를 그려놓았다. 그의 우렁차고 거센 목소리는 신앙이니 복종이니 하는 말을 할 때에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커난 부인이 손을 닦으며 방 안으로 들어와 한몫 끼였을 때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침묵을 깨뜨리지 않고 침대 발 쪽에 몸을 기대었다.

“난 한때 존 매케일[1791∼1881. 처음 교황 불과오설에 반대했다가 결정된 후엔 즉시 복종했다는 것으로 유명, 아일랜드의 독립투사이기도 함]을 본 적이 있는데,” 하고 커난 씨가 침묵을 깨뜨렸다. “죽을 때까지 그 생각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는 아내의 동의를 구하려는 듯이 아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에게 여러 번 얘기했잖아?”

부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존 그레이 경[1816∼1875. 위크로의 계곡에서부터 더블린 시에 음료수를 제공한 상수도 창설의 공로자. 그의 동상이 오코넬 가에 있다] 동상 제막식 때였어. 에드먼드 드와이어 그레이가 횡설수설 연설을 하고 있는데, 이 괴팍하게 생긴 노인이 숱한 눈썹 밑으로 그레이를 바라보고 있더군.”

커난 씨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이고, 성난 황소처럼 아내를 노려보았다.

“야아!” 하고 고함을 치고는 자연스런 얼굴로 돌아갔다. “사람 얼굴에서 그런 눈을 본 적은 없어. ‘이놈, 네 속을 다 안다’ 하는 듯한 눈초리였다구. 매 같은 눈알이었어.”

“그레이 집안에 어디 쓸 만한 놈이 있어야 말이지” 하고 파워 씨가 한마디 했다.

또다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파워 씨가 커난 부인을 돌아다보며 갑자기 명랑한 말투로 말했다.

“저, 커난 부인, 우리가 이제부터 주인 양반을 독실하고도 경건한 로마 가톨릭교도로 만들어볼 작정입니다.”

그는 일동을 전부 포함한다는 듯이 일동을 가리켰다.

“전원이 다 함께 묵상회에 가서 우리들의 죄를 고해하렵니다 ―― 우리도 진정 그러길 원하니까요.”

“난 상관없어” 하고 커난 씨는 다소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부인은 자기가 만족해하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 상수일 거라고 생각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얘길 들어줄 신부님이 가엾으시지.”

이 말에 커난 씨는 얼굴빛이 달라졌다.

“내 얘기가 듣기 싫다면 듣지 말라지. 난 그저 내 신세타령이나 들려줄 셈이야. 나도 그리 못된 인간은 아냐 ―― .”

커닝엄 씨가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우리 다 악마를 물리치도록 합시다. 다같이 악마의 공작과 허식도 잊지 말고.”

“마귀야, 물러가라!” 하고서 포가티 씨는 껄껄 웃으며 일동을 바라보았다.

파워 씨는 잠자코 있었다. 자기야말로 완전히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기쁜 표정이 얼굴에 언뜻 떠올랐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고 커닝엄 씨가 입을 열었다.

“두 손에 촛불을 켜들고 서서 영세받을 때 하는 서약을 다시 하면 돼.”

“참, 초를 잊지 말게, 톰.” 머코이 씨가 끼어들었다.

“자네가 뭘 하든지 간에.”

“뭐라고?” 커난 씨는 놀라는 눈치였다.

“초를 가져가야 한다고?”

“아, 그럼” 하고 커닝엄이 말했다.

“어림도 없는 소리.” 커난 씨가 재치있게 슬쩍 넘겨버린다.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어. 난, 나도 그만 한 일은 할 수 있단 말이야. 묵상기도도, 고해도…… 다 하겠지만…… 촛불만은 안 돼! 어림도 없는 소리, 촛불만은 싫어!”

그는 일부러 위엄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저 소릴 좀 들어보세요!” 아내는 기가 막히다는 말투로 말했다.

“촛불만은 싫어.” 커난 씨는 자기가 손님들에게 어떤 감명을 주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연달아 이리저리 고개를 저었다.

“그런 요술등 같은 걸 누가 들고 가느냔 말이야.”

모두 한바탕 와 하고 웃었다.

“훌륭한 신자시군!” 여전히 비꼬는 아내의 말투였다.

“촛불은 싫어!” 커난 씨도 여전히 지질 않았다.

“그것만은 안 돼!”

 

가디너 가에 있는 제수이트 성당은 거의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옆문으로 들어와 신도의 안내로 발끝으로 살금살금 통로를 걸어가면서 앉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옷들을 잘 입고 태도가 단정했다. 성당 안의 등불 빛이 검은 옷에다 흰 칼라를 댄 무리와 이따금 여기저기에 보이는 스카치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과 녹색 대리석 무늬가 있는 기둥과 서글퍼 보이는 그림 위에 비쳤다. 양복을 입은 신사들은 양복 바지를 약간 무릎 위로 끌어올리고 모자를 안전하게 놓은 다음 벤치에 앉았다. 깊숙이 기대앉아서 높다란 제단 앞에 매달린 빨간 점 같은 먼 불빛을 곧장 바라보았다.

설교단에 가까운 한 벤치에는 커닝엄 씨와 커난 씨가 앉아 있었다. 그 뒤 벤치에는 머코이 씨가 혼자 앉아 있었고, 그 뒤 벤치에 파워 씨와 포가티 씨가 앉아 있었다. 머코이 씨는 다른 친구들과 한자리에 앉으려고 했으나 끝내 자리를 못 찾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행이 X꼴로 자리잡고 앉았을 때 윷의 다섯 눈처럼 앉았다고 농담을 던져보았으나 다들 웃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그도 또한 엄숙한 분위기에 감동되어 종교적인 자극을 느끼기 시작했다. 귓속말로 커닝엄 씨는 커난 씨에게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고리대금업자 하포드 씨며 설교대 바로 밑에 새로 선발된 시의원의 한 사람과 나란히 앉아 있는 등기업자이며 시장 보조인인 패닝 씨를 보라고 속삭였다. 그 오른편에는 전당포를 셋이나 소유하고 있는 마이클 그라임즈 노인과 구청에 다니는 댄 호건의 조카가 앉아 있었다. 저 앞쪽으로는 《프리맨즈 저널》지의 주필 헨드리크 씨와 한때 실업계에서 상당한 거물이었고 커난 씨의 옛 친구인 오캐롤 씨가 앉아 있었다. 낯익은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띄자 커난 씨의 마음은 점점 더 놓였다. 아내가 손질해준 모자는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한두 번 그는 한 손으로 모자 테를 가볍게 그러나 떨어지지 않게 쥔 채 또 한 손으로 커프스를 당겨서 바로잡았다.

상반신을 흰 법의로 싼 풍채가 당당한 사람이 허우적거리며 설교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회중들은 수선거리다가 손수건을 꺼내어 펴놓고 조심조심 그 위에 무릎을 꿇었다. 커난 씨도 남이 하는 대로 따라했다. 신부의 선 모습이 이제 설교단 위에 우뚝 보였는데, 신장의 3분의 2와 큼직한 붉은 얼굴이 난간 위로 드러나 보였다.

퍼든 신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성단 위의 빨간 불을 향하여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기도를 올렸다. 잠시 후에 얼굴을 들고 일어섰다. 회중도 일어나서 모두 다시 벤치에 앉았다. 커난 씨는 모자를 다시 무릎 위 제자리에 놓고, 신부에게로 긴장된 얼굴을 돌렸다. 설교자는 정중하고도 큰 몸짓으로 법의의 넓은 소맷자락을 하나씩 뒤로 보내고, 회중의 얼굴을 주욱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의 아들들은 자기 세대에 있어서는 천사들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그러므로 불의(不義)의 재물로 친구를 삼을지니 너희가 죽을 때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퍼든 신부는 우렁찬 음성으로 자신있게 이 구절을 설명해 나갔다. 이 구절이야말로 성경 가운데서 정당하게 해석하기 가장 힘든 구절이라고 그는 말했다. 얼핏 보기에는 다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교하신 고매한 가르치심과는 상반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이 구절은 세속적인 생활을 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지만 속되지 않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지침으로는 특별히 적절한 것이라고 신부는 말했다. 이것은 실업가와 직업인을 위한 구절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성의 모든 구석구석을 살피시는 거룩하신 총명으로 모든 사람이 종교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속 가운데서 살지 아니하지 못하며, 또 어느 정도까지는 속세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다 ―― 그리하여 이 성서의 글귀로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충고의 말씀을 주시고자 종교적인 문제에는 세상에서 가장 관심이 적은 황금 숭배자들을 종교생활의 모범으로서 그들에게 보이신 것이라고 했다.

“내가 오늘 저녁 여기 나온 것은 어떤 무시무시한 대단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개 세속인으로서 같은 형제들에게 이야기하고자 온 것입니다. 나는 실업인에게 이야기하러 온 것이니까 실업가답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런 은유를 쓸 수가 있다면 나는 당신들의 심령의 회계원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 모두가 각기 자기의 장부, 심령의 장부를 펴서 그것이 양심과 꼭 부합이 되나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엄격한 감독자는 아니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인간의 사소한 잘못도 이해하시고, 우리의 가엾은 타락한 본성의 약점도 이해하시고, 이 세상살이의 여러 가지 유혹도 이해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과오를 범할 뻔했으며, 또 모두 범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즉 하나님에 대하여 솔직하고 남자다워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장부가 모든 점에 있어 잘 부합되면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자, 수지계산을 맞춰보았더니 다 잘 되었습니다’라고.”

“그러나 흔히 그렇듯이 혹 무슨 착오가 있으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솔직하고 정정당당하게 이렇게 말씀해야 옳을 것입니다. ‘자, 저의 장부를 조사하였더니 이 점과 이 점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러이러한 점은 시정하겠습니다. 제 장부를 바로 맞추어보겠습니다’라고.”